2023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오랜 침묵을 깨고 내놓은 신작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기존 지브리 영화와는 결을 달리하는 작품으로 주목받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현실의 비극 위에 환상의 세계를 펼쳐내며, 상실과 성장, 정체성과 삶의 의미라는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상실을 넘어 자아로 나아가는 여정: 줄거리
영화는 일본이 전쟁 중이던 1940년대를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주인공 마히토는 화재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함께 도쿄를 떠나 외딴 시골 저택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이 저택은 아버지의 새 아내이자, 어머니의 여동생인 나츠코의 집이며, 마히토는 새 어머니와의 관계에 혼란을 겪습니다. 외적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이 공간에서 마히토는 내부적으로 깊은 상실과 분노, 정체성 혼란을 안고 살아갑니다. 어느 날, 저택 근처의 수상한 푸른 왜가리가 마히토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며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모험이 펼쳐집니다. 그는 자신이 죽은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말하고, 마히토는 수수께끼 같은 탑을 통해 이차원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그곳은 시간과 공간의 질서가 뒤틀린 세계로, 인간과 짐승, 생명과 죽음, 과거와 현재가 얽혀 있는 미지의 세계입니다. 이 세계에서 마히토는 다양한 존재들을 만나게 됩니다. 자신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소년, 독재적인 세계의 창조자, 말을 하는 새와 생명을 지닌 돌, 그리고 잊고 있던 어머니의 기억까지. 이 환상은 마히토가 자신의 감정과 상처를 직면하는 내면적 여정입니다. 결국 그는 그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지만, 더는 과거의 혼란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성장과 치유, 정체성 회복이라는 메시지가 환상적 서사 안에서 은유적으로 완성됩니다.
전쟁의 잔해 위에 펼쳐진 환상: 시대적 배경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배경 자체가 주제를 형성하는 강력한 장치입니다. 영화는 태평양 전쟁 중 일본 사회의 혼란기를 현실 배경으로 삼습니다. 도쿄의 공습, 병원 화재, 식량 부족, 공장과 군사시설 등은 작품 속에서 명시적으로 등장하거나 은근히 암시되며, 전쟁의 그림자가 전반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특히 마히토의 어머니가 병원 화재로 사망했다는 사실은, 당시 일본 민간인들이 전쟁 중 겪었던 상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전쟁은 주인공의 정신적 불안정과 세계관 붕괴를 상징합니다. 마히토는 혼란한 외부 현실 속에서 감정적으로 배제하고, 이로 인해 다른 세계로 도피하게 됩니다. 그 도피는 자신이 처한 현실과 내면의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입니다. 특히 현실과 환상을 가르는 탑은, 전후 일본 사회가 직면했던 도덕적 공백과 재건의 상징으로도 해석됩니다. 또한 이 영화는 요시노 겐자부로의 동명 소설에서 제목을 차용했지만, 내용적으로는 거의 독립적입니다. 원작 소설이 청소년을 위한 윤리적 고민을 다뤘다면, 영화는 그 메시지를 미야자키 감독의 개인적 철학과 전후 세대의 기억에 맞춰 재해석합니다. 일본이 집단주의, 군국주의에서 민주주의 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느낀 정체성의 혼란과 윤리의 상실은, 마히토의 여정을 통해 은유적으로 재현됩니다. 전쟁이라는 물리적 비극은 곧 개인의 심리적, 철학적 혼란을 낳으며, 영화는 이를 환상과 상징의 언어로 치밀하게 풀어냅니다.
질문을 남기는 이야기, 미야자키의 마지막 통찰: 총평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스토리의 흐름이나 구성이 기존의 지브리 작품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단선적이지 않고, 현실과 환상, 의식과 무의식이 교차하며, 논리보다는 상징과 이미지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는 관객에게 혼란을 줄 수 있지만, 바로 그 모호함 속에서 이 영화는 진정한 철학적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삶이란 원래 단순히 이해할 수 없는 연속된 감정과 사건의 흐름이며, 이 영화는 그러한 인생의 본질을 형식과 내용 양면에서 구현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작품을 통해 “삶은 끊임없는 질문”이라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무엇이 옳은가, 나는 누구인가,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영화는 이에 대한 해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마히토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가 각자의 세계에서 고통을 겪고, 그것을 껴안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작화와 음악 역시 이 철학적 정서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줍니다. 잔잔한 수채화 같은 배경, 상징으로 가득 찬 몽환적인 이미지, 히사이시 조의 서정적인 음악은 관객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자극합니다. 특히 탑 내부에서의 장면들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어선 미장센으로, 감정의 깊이를 시각화한 예술적 구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은퇴 선언 이후 제작된 영화로, 일종의 감독의 ‘작별 인사’ 또는 ‘유언’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어린이에게 인생의 방향을 제시하기보다, 함께 고민할 질문을 남기려 했습니다. 이는 예술적 성찰의 작품으로서 오래 기억될 만한 이유입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인생과 존재, 죽음과 상처를 사유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명확한 답을 주지는 않지만, 우리가 질문을 품은 채 살아갈 수 있도록 깊은 통찰을 제시합니다. 진지하게 삶을 되돌아보고 싶은 분이라면, 반드시 이 영화를 감상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